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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 침묵 = 말씀


Part I, 사랑


우리는 열정적인 사랑을 갖고 있을 수록

그 사랑에 집착하고 구속되어져

끝내는 상처를 입게 되는 수가 있다.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지만

그 사랑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

그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성숙은

논리의 상대성 속에서

일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접근 불가능한 논리가

하나님의 존재가치를 인식할 때

그 일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예를들면,

어느 시인은 꽃을 사랑하지만

꽃을 꺾지 않는다.

꽃의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떠한 대상을 사랑하지만

그 대상을 소유한다는 욕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대상을 소유하려고 할 때는

그 대상을 궁극적으로 소유할 수도 없으며

끝내는 상처를 입게 된다.

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꽃을 꺾어 집에 가지고 와서

꽃이 시들어 죽게 만드는 것이

꽃을 사랑하는 것이 이니다.

이는 그의 이기적인 욕심에 의한

소유형태에 지나지 않을 수가 있다.


꽃을 진정 사랑한다면,

꽃이 아플때,

아름다울때,

그 아픔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꽃이 피어 있는 주위에서 동무가 되어주는

풀과 나무, 들과 숲,

그리고 꽃의 연인이 되어주는

벌과 나비들을 사랑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꽃에 영양을 공급하는

토양과 햇볕, 공기등의

이 모든 자연을 사랑하게 됨을 의미하며,

그 꽃을 사랑하고 있는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인은

영원한 생명의 꽃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정도 순수하게,

얼마만큼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또한 그 꽃을 통하여 자기자신을 발견한

어느한 시인이 존재한다는 것도 모른채

시들어 가는 그 꽃을 사랑한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소유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을 때에는

인간의 존재가치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회적인 편의, 관습, 상호간의 경제적 이해관계,

가족관계 등의 사회속에서 만들어진 구조

(어쩌면 tailor된 복장과도 같은) 에 들어감으로서

그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소유를

공유하고 있을 따름 일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중 어떠한 요소가 깨어졌을 때

자신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며,

사랑한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수가 있다.


우리는 존재가치로서의 사랑을 배워야 한다.

어떠한 사랑이 사라질 때에는

이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같은 사랑을 한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가져오는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사랑으로 부터 자유로움을

항상 잊어 버려서는 안된다.

사랑할 줄 알았으면

사랑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날 줄도 알아야한다.

사랑을 하면서 사랑으로 부터

자유롭게 벗어난다는 것은

사랑의 주체자로서의 자기와

사랑의 대상에 대한 존재가치를

인식할 때 만이 가능하다.

이 세상에의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섭리속에서 창조되어 있는

그 신비로운 존재가치를 갖고 있으며

그 존재가치를 우리는 사랑해야한다.

그러하기 위해선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로서의

자기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한다.

이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며

우리가 소유하기 위한 사랑이 아니다.

존재하고 있는 자체로서의 대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사랑에는 상처를 입지 않는다.

그 사랑의 대상이 떠나든지

그 사랑에 대한 보상이

부정적인 반대급부에 직면 하더라도

우리는 상처를 당하지 않는

사랑의 힘을 가져야한다.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요한 1서 4:18)


Part II, 침묵


말과 말이 침묵을 통하지 않고 연결될 때에는

그 말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며

그 의미없는 말에

스스로 자기가 도취되어 버릴 위험을 갖게 된다.


“침묵은 말이 없이도 존재하지만

말은 침묵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침묵의 뒷받침이 없다면

그 깊이를 상실하게 된다.”


(Max Picard; The World of Silence)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자기도취는 되지 않지만

그 의미를 상실한 상태에서 언어를

소유의 개념을 사용하게 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으로 인간이 태어나고

우주만물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말씀이 창조되기 이전에는

침묵이 있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쓰고 있는 “소리로 나타내어진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뜻” (logos)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침묵속에서

사물을 만들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 이 뜻이다.

따라서 뜻과 침묵은 하나님에게는 동일한 것이다.

여기에 궁극적인 논리의

상대성이 일치를 보고 있다.

침묵과 하나님의 뜻과 형상이

일치된 개념이 나온다.

즉 “있음” 과 “없음”이

“뜻”으로 연결되어 있는 동일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뜻은 형상이며 존재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한 사랑도

존재가치로 이해를 할 때에는

두개의 상대적인 개념에서

일치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Max Picard 는 그의 The World of Silence에서


“말씀과 침묵은

하나님 속에서는 하나이다……..

하나님의 침묵이

그의 사랑으로 인하여 말씀으로 변한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자신을 내어주는 침묵이며

그 자체를 인간에게 준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피조물인 인간에서 보면

우리의 침묵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린도후서 12:4)


자기자신을

자기라고 불리우는 것으로 부터 내던져 보면

말씀이 없는 침묵만이 남는다.

이 침묵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속에 있게 된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또 기도할 때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태 6:6-7)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연속에 있으면

마치 자기가 대자연에 흡수되어져서

자기와 자연이 하나로 일치되어

대자연의 흐름에 따라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치 그동안 메말랐던 “솜”이

“침묵”이라는 “물”속에 잠기는 것을 느낀다.

“솜”이 “물”속에 들어가 있으면

더 이상 솜이 자기마음되로 움직이지 않게 된다.

물의 흐름과 일체가 되어

물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또한 침묵이라는 물은

솜속에 들어가 있는 먼지들을

깨끗이 걸러내기도 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가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는도다.”


(시편 19:1-4)


Part III, 존재


나는 어려서 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떠나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오랫만에 집에 들어가 밥상을 대할 때면

“이 세상에 나를 위하여 이렇게 음식을 차려 주시는

분이 계신다” 라는 생각을 하고

눈물을 머금은 적이 많다.

수도원에서의 생활중

나에게 가장 신성하고 거룩한 순간은

기도때 보다도 음식을 대할 때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우리가 은혜롭게 느끼지 못할 때가 있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매일 느끼지 못하고 생활하는 수가 많다.

우리가 지금 숨쉬고 음식을 대하며

살아가는 이 순간은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임에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전 손가락을 다쳐

손가락의 피부가 많이 벗겨져 나갔다.

매일 손가락을 보면서

손가락이 낫아가는 것을 신비롭게 관찰하였다.

상처가 아물어 딱지가 생기고

그 딱지가 떨어져 나가

보드라운 피부가 형성되고

그리고 지금은 어느손가락이 다쳤는지도 모르게

완벽한 원형을 복구해 주는

신비로운 경이를 관찰하면서

이 손가락이 나아가는데

나는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손가락이 낫는데에도

하나님의 우주의 창조의 역사를 재현하고 계시며

“나”는 “나”의 육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것

어느하나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계신다.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것이 없느니라”


(요한 1:2)


하나님의 말씀이 이 모든 자연을 창조하였기 때문에

우리주위의 들과 나무, 꽃과 새들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이 되어서

우리와 함께 계셨다.

우주만물과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로 연결되어

우주만물에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가 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그리스도가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이다.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요한 1:10)

 

Daniel Ro
December 1988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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